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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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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유박해때 여자노비들의 활약과 그 신앙생활-5 날짜 2006.03.20 11:28
글쓴이 관리자 조회 609

  (4) 비 구애


 


  권철신의 노비이며, 신유년 3월 10일에 간성으로 유배되었다.


  철신의 누이동생의 큰아들인 한림동 이연기집과 분금 이사환과 안상전이 모두 천주교를 믿고 있었다.  따라서 노비인 그녀 역시 따라 배워서 알게 되었다 했다.  그녀는 문초에서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안상전이 천주교 책을 공부하던 중, 작년(1800년)에 여러 번 아현 황진사 집과 서로 만나 천주교 교리책을 강학하였고 황사영 역시 종종 와서 이야기를 나누고 갔다.  안상전은 또 안국동 홍필주 집에서 강완숙과 더불어 그 집 좁은 방에서 천주교 교리를 강습했다.  그 집에 왕래하는 자는 알지 못하며, 서창을 여러 번 왕래한 일이 있는데 반드시 그녀가 심부름을 하였다.  1월 초순에 황사영이 와서 상전집의 방을 건너 가, 안상전과 서로 만나서 강론한 뒤 2일 동안 머물렀다.  황사영은 구애로 하여금 홍씨의 어머니가 잇는 곳에 서찰을 전하게 했다.  다음날, 상전의 11살 짜리 아이가 수두로 병이 나서 죽을 지경에 이르게 되자, 황사영은 집에서 나가 홍필주의 집에서 하룻밤을 머무른 뒤, 홍필주의 어머니와 친한 용호영의 노파 집에서 이틀을 머물렀다.  또 그 뒤 영목에 가서 석정동, 권일신의 아들 권상술의 집에서 하룻밤을 머무르며 피신했다.  그녀의 상전에게 들은 말로는, 황사영이 용호영 내의 노파집에 머무를 때, 그가 본가에 보내온 서찰이 도착하자 강완숙은 구애를 불러서 그 서간을 비밀리에 황사영에게 전하라고 하면서 황사영이 숨어 지내는 여러 곳을 말하게 되었다.  그때 그녀는 그 말을 듣고 서찰을 전했다.  황사영은 항상 그녀가 있는 집에 자주 왕래했는데, 이생원이라는 사람이 여러 번 와서 본적이 있었다.  그녀는 남판서댁 비녀 구월의 여식과 어릴 때부터 친했기 때문에 박녀나인이라고 부르고, 여러 번 같ㄷ이 한림동 노가의 집에 왕래했으며, 또 복혜의 딸과 바로 이웃에 사는 양청의 집 사환 박녀에게 천주교 책을 가르치기 위해 유혹하고, 복례가 사온 책값 한 냥 70전을 박녀에게 받아왔다.  박녀는 종종 서소문 내의 이용겸의 집에 들어가 지냈다.  박녀의 어머니와 딸은 가고 이용겸에 대대서는 자세히 알지 못하며 이생원은 우리 상전집에 왕래할 때 보았으나 뒤에는 보지 못하였다고 그녀는 말하였다.


그녀는 비록 천한 노비이었으나 주인과 분금의 처소에서 모두 천주교를 믿고 기도하였고, 그녀 역시 자주 신자들에게 연락하면서 심부름을 했다.  다른 말은 하지도 않고 알지도 못한다고 했다.  박나인이라고 불리면서 다른 양반집 노비들을 천주교로 유인하였으며 교리서와 성화를 사고 팔았다.  거간에 소개한 것은 그녀가 천주학에 점점 단단히 물들으니 그간 사정은 그 어머니가 감히 숨겨서 직고를 기피했다.  그는 그의 상전이 천주교에 깊이 빠져있는 까닭에 주인을 따라 학습을 햇다고 했다.  금월, 황사영이 용호영 내의 노인집에 유숙하고 있을 때 그 곳으로 살림살이를 가져다주었는데 이 일은 홍필주의 어머니가 시켜서 한 일이었다.  그리고 노비인 자신이 황래하면서 려러 곳에 연락을 하고 천주교 서적을 매매하였다.


 


  (5) 홍어인애기연이


 


  충훈부에 살았다.  포청에 자수하여 신유년 4월 21일에 풀려났다가 다시 체포되어 5월 15일 안악으로 유배되었다.


  홍연이는 좌포청 포교 강득령의 어머니이다.  보통 때 그녀는 천주교를 믿는다는 말을 하지 않았으며, 자신이 진심으로 천주교를 믿고 행하지 못함을 한탄하였다.  그녀는 자신이 처음 천주교에 입교한 동기를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다.


 


  [집에서 후문으로 나다니면서 생업을 했었는데, 지난 겨울, 동네의 홍문갑 집에 불이 났을 때 그녀의 아들이 급히 가서 불에서 구해주었다.  이로써 그 집의 아래 위 사람들이 은혜를 입었다고 하여 비자 소명과 그 이름을 모르는 노비가 그녀의 집에 상시로 출입하게 되었다.  금년 2월초에 소명이 특별히 와서 어양 나라 책자 3권을 잠잠히 놓고 갔던 일이 생겼다.  그것을 봉해 두었는데 종래 가져가려고 생각하지 않는고로 겁이 나지 않는 것은 아니나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이달 초오일 아침에 주뢰형을 가히기 위해 다시 불렀다.]


 


  그때 그녀는 문초 받는 중에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그녀의 집은 홍필주의 집 근처에 있었으므로 날마다 왕래하면서 강완숙의 처소에서 교리를 배워 믿게 되었다.  첨례 강론 때도 참석해서 남경으로부터 온 신부에게 강연을 들었다.  그 사람은 마른 인물로 한 50세 가량 되고 얼굴이 길고 키가 컸으며 수염이 길었다.  말은 서툴러 자세히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신유년 정월에 금교령이 내린 후에는 다시 홍필주 어머니의 집에 가지 않았다.  그런데 강완숙이 노비 소명으로 하여금 서양책 한 상자를 그녀의 집;에 숨겨달라고 했으며, 이를 거절하지 못하고 두었다가 마침내 색출되었던 것이다.  포청 기포의 말에 그녀들은 폐궁나인 강경복의 처소에도 왕래했다고 했다.  즉 폐궁에 숨어있던 주문모 신부를 보좌하여 밖으로 달아나게 한 자로 죽어 마땅하며, 집이 강완숙의 집과 이웃하여 있는데 강완숙이 만나기를 청하여 서로 왕래하였다.  그러다가 집안이 망하여 가보지 않았는데, 작년 11월에 가서 보니, 강완숙이 후하게 대접하였고, 마침 그녀의 아들이 불을 꺼준 일을 감사했다.  그 후 또 완숙의 요청으로 만나러갔는데, 완숙이 그녀에게 교리를 가르쳤다.  그래서 천주교 경문을 하였다.그녀는 무식하고 귀와 눈이 어두워 그 외 다른 것은 알지 못했다.  따라서 경문을 외울 수가 없어, 4,5년 뒤에 학습하기로 하였다.  그 후로 또 그 집을 가서보니, 마루 위헤 한 남자가 있는데, 방 넘어 창틈으로 몰래 살펴보니 남자인 것 같아 그녀가 물으니 완숙은 답하기를 그녀의 사부라고 하였다.  지금 생각하니 이 남자가 소위 주문모 신부였다고 그녀는 말했다.


  수년 전 그녀의 집 좁은 방에 폐궁나인 강경복의 모친이 세들어 살았는데, 그 모친이 죽어서 금년 정월에 경복이 그 어머니의 대상을 지냈다.  그래서 여러 날 동안 머무르다가 천주교 서적이 발각된 일로 잡혔다.  그리고 그 집에 우물이 2개 있는데, 물긷는 여자들이 끊임없이 와서 전부 물을 길어내고 무슨 물건인지는 모르지만 포장하고 판자로 묶고 싸서 우물에 숨겼다.  그녀는 그것을 세탁상자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꺼내어 열어 보니, 그것이 교리서를 둔  함이므로 몹시 놀라고 겁이 나서 땅에다 불살라 버렸고 잡히는 경우에 대비해서 그 흔적을 없앴다.  그리하여 그녀는 비록 천주교를 상세히 모른다고 했으나, 실제로는 천주경을 외우고 교리서를 얻어 완숙의 비 소명에게서 배웠다.  그리고 주머니를 만들어 한 갑 속에 숨겨두라고 천주교 책을 준 것을 잡히기 전에 겁이 나서 태워버렸다.


그녀는 포교의 어머니로 나라가 금하는 사서를 외우고 숨겼으니 벌을 받아 마땅하나, 깊이 물들지는 않았으며 대개 경복에게 말한 것처럼 사서는 불에 던져 모두 태워 버렸다 한다.


 


  (6) 비녀 신옥


 


  윤현가의 노비로 신유년 3월 21일에 윤현의 처와 함께 잡혔다가 장(杖) 50도를 받고 풀려났다.


  양근에서 태어나서 살았으며, 1800년에 상경하여 윤현가에서 심부름을 했고 정광수의 집에 자주 왕래하면서 천주교의 교리를 배우고 강의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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