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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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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유박해 때 동정녀들의 취회(여교우공동체) 활동-3 날짜 2005.10.19 14:54
글쓴이 관리자 조회 499
(5) 동정녀 이 아가다

광주이씨가계인 이동지의 딸로, 1839년 초에 순교한 회장 이광헌(아우구스띠노)의 먼 친척이었으며 양근 지방에서 부모를 모시고 살고 있었다.
일찍부터 그녀는 동정을 지키기로 결심했으나 곧 외교인들의 위협에 견딜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그녀는 친척 중의 한 사람인 유한숙의 도움으로 그 곳을 몰래 빠져 나와 서울 윤점혜의 집에 머무르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그녀는 그 은신처에서 매우 자유롭게 기도와 신앙생활에 전념하며 마지막 싸움을 준비할 수 있었다.

(6) 동정녀 조도애(아나다시아)

조섭의 누이동새으올 동정녀들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활동했다. 자칭 오가의 아내라고 했으며 교명은 아나다시아이고, 신유년 4월 9ㅇ리에 영암으로 유배되었다.
조도애는 벽동에 살았으며 병진년에 오라버니 조섭으로부터 천주교 책을 배우기 시작했고, 곧 입교하여 영세를 받고 교명을 아나다시아라고 했다. 평상시에 같은 동리에 살며 왕래가 있던 정광수의 집에서 교리를 배우고 강론을 들었다고 하며 다른 곳에는 결코 출입한 일이 없다고 신문관에게 잘라 말했다.
형리들의 말에 따르면, 그녀는 오랫동안 천주교에 깊이 빠져 있어서 비록 주뢰형 등의 혹독한 형벌로 죽음에 이르렀어도 마음을 고쳐멁을 뜻이 없어, 배교할 생각을 하지 않고 긑까지 자기의 신앙을 지켰다고 한다.

(7) 동정녀 김경애

김경애는 이어인애기의 딸이며 신유년 3월 16일에 옥에 갇히고 4월 10일에 사천으로 유배되었다. 그녀는 모친과 함께 영세를 받고 입교하였는데, 동정녀이면서도 스스로 쪽을 쪄서 머리를 올리고 허가와 결혼을 했다가 과부가 되었다고 말하였다 한다. 이때 허가란 허무의 뜻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즉 결혼하지 않았다는 뜻을 내포한 표현이었다.
이런 까닭에 그녀는 소위 우위상풍패속(尤爲傷風敗俗)이라는 죄목, 즉 풍속을 상하게 하고 부패시킨 여인 중에서도 가장 심한 자로 지목되었던 것이다.
문초록에 따르면 그녀는 시집가는 것이 싫어서 스스로 머리를 올리고 군기사(軍器寺)앞에 집을 사서 과부들과 함께 수정(守貞)을 하면서 공동생활을 하였다. 김경애는 결국 동정을 지켜 처녀로 늙었다는 것이 가장 큰 죄목이 되어 처형되었다.

(8) 동정녀 박성염

이합규의 외숙모인 정분이의 가까운 친척이며, 항상 청상으로 가칭하였다.
포청에 체포되어 문초를 받을 때 그녀는 "저는 일찍이 과부의 몸으로 의지할 데가 없어 종현에 사는 저의 사촌형부 혜청사령의 집 행랑을 빌려 의접해서 살고 있었습니다. 지난 해(1800년) 7월에 모친으로부터 천주교 교리서를 배우기 시작했고, 어머님이 세상을 떠난 뒤 스스로 육신과 세상의 슬픔을 생각해서 점점 더 깊이 천주교에 빠졌습니다. 이번 달 초이틀에 저의 육촌동생 정분이가 한 여인과 함께 저희 집에 왔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여인이 누구냐고 동생에게 물으니, 답하기를 홍가의 비녀 소명이라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추워서 벌벌 떨고 있었고 소명이란 이곳 저곳을 왕래하는 자이므로 정분이를 시켜 유숙하고 가게 하였습니다. 저는 이미 천주교를 믿고 있으므로 비록 중형을 인하여 죽게 될지라도 천주를 배반할 마음이 조금도 없습니다."라고 말하였다.
또한 그녀는 천주학을 배워서 자신에게만 그치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전하였다. 그녀는 결국 사학에 깊이 빠져 있다는 죄목으로 신유년 4월 20일 영일(迎日)에 유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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