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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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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유박해 때 부녀자들과 노비들의 취회 활동-2 날짜 2005.11.10 15:58
글쓴이 관리자 조회 555
(1) 한신애(아가다)

(2) 최설애

최설애는 안악 사람으로 12세 때 부친을 따라 상경하여 중부 대사동에 살았다. 성장하여 경혼을 하고 얼마후 남편이 죽자, 장사를 하며 근근히 연명하였다.
그리고 그 무렵에 왕십리에 사는 과부에게서 처음으로 천주교를 배우기 시작했으며, 정복혜(간디다)의 주선으로 이주겸에게서 교리를 배우고 영세를 받았다. 그리고 1800년 7월 이후에는 김의호의 집에 머무르면서 천주교 학습에 더욱 매혹되었고, 송재기 등과 친숙하게 왕래하면서 그의 집에 모여 강론을 들었다.
1801년 2월 무렵에는 송재기의 집에 자주 왕래하게 되었다. 어느 날 그녀가 송재기의 집 내방에 있었는데, 그녀를 본 송재기와 김의호는 서로 의논하여 그녀에게 상복을 재단하여 만들라고 하였다. 이에 그녀가 김의호에게 누구의 것이냐고 묻자 그는 황사영의 것이라고 대답하였다. 그녀는 평소에 그의 이름을 익히 들은지라 상견이 늦었다고 하며 황사영을 향하여 인사하였다. 그는 휘를 황진사라고 하였으며 그 상복을 입고 피신을 떠나려는 참이었다. 그 때 그녀는 황사영에게 "지금의 형색이 비참한데 어떻게 하면 다시 만나뵙겟습니까?"라고 하니 황사영이 답하기를 "피차에 죽지 않으면 당연히 다시 만나뵙겠습니다"라고 하였다. 그 후 그녀는 송재기의 부인과 함께 상복을 만들었고, 황사영은 이 상복으로 변장하여 피신했다. 얼마 후 최설애는 체포되어 천주교를 올바른 도리로 고백하고, 형벌을 당하면서도 마음을 바꾸지 않은 채 끝까지 자신의 신앙을 지켰는데 그녀의 중요한 죄목은 황사영에게 상복을 만들어 주어 수사망을 빠져나가게 도왔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1802년 12월 26일, 16명의 교우들과 함께 사형을 선고받고 서울에서 순교하였다.
(3) 정복혜(간디다)
(4) 윤윤혜
(5) 강경복
(6) 김연이(유리안나)
(7) 김희인

종부서리 임세풍의 부인으로 군기사 앞에서 살았고, 신유년 3월 16일에 체포되고 나서 일단 풀려났다가 가택수색에서 천주교 서적과 성화가 나왔기 때문에 다시 붙잡힌 것으로 여겨진다. 그녀는 흉년,홍임,이어인애기, 그리고 김경애와 함께 심문을 받았다.
이들은 모두 나이 어린 청상과부로서 김희인이 150량을 내고 김경애가 50량을 내어 군기사 앞의 집을 사들이고, 시숙모 홍임 등 7,8명이 모여 공동생활을 하였다. 또한 3,4년 전부터 정광수의 아내와 사귀면서 그녀에게서 교리를 배우고 영세를 받았다. 이들 과부들의 공동체생활은 거의 수도원에 모여서 천주교의 여러 가지 교리를 학습하고 수행하였으며, 주문모 신부가 거처했던 강완숙의 집에 출입하면서 신앙생활에 더욱 몰입했던 사실이 기록에 나타나고 있다.
이들의 신앙생활의 진지함은 당시 주변사람들의 비상한 관심과 이목을 집중시켰던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이들은 성화.성물.천주교서적을 교환.제작.판매하였으며, 그 공동체의 대표적 인물들은 김희인이나 한신애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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