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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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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유박해 때 동정녀들의 취회(여교우공동체) 활동-8 날짜 2006.02.06 11:49
글쓴이 관리자 조회 558

(27) 최소사


  벽동에서 살았다.  3월 26일에 그의 딸과 함께 체포되었다가 27일에 풀려났다.  같은 동네에 사는 정광수의 어린 노비가 여러 차례 간장을 가지고 와서 팔았으며, 그 후 정광수의 나내가 그 노비를 시켜 솜옷을 보내주어 허락하고 받았다.  이러한 관계를 맺어오다가 정광수의 노비가 전하기를 정광수의 아내가 한 번 보기를 원한다고 하여 최소사는 그의 노비 합덕을 데리고 정광수의 집에 갔다.  그 곳에서 최소사가 나무아미타불을 입으로 외우니 정광수의 아내는 이것을 그치게 하고 "만일 그것을 외우고 죽은 뒤 지옥에 가면 어찌하겠는가"라고 말한 후, 바로 천주교의 십계를 가르쳐 주면서 "만일 이것을 외우면 죽은 뒤에 천국으로 올라간다"고 하여 최소사는 흥미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최소사는 나이가 많아 갑자기 듣고 그 경문을 외울 수가 없었기 때문에 정광수 부인이 여러 번 그것을 가르쳐 주었다.  그 때 최소사가 몸이 대단히 노쇠하고 기억력이 없어서 이것을 따라 외우지 못하자, 정씨의 아내는 "만일 육식을 하지 않으면 정신이 스스로 맑아져서 십계를 쉽게 외울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이에 최소사는 집에 돌아가 육식을 하지 않게 되었고, 이에 놀라 최소사의 딸리 그 연유를 묻자 정광수 아내의 이야기를 하였다.  그러자 그 딸이 큰 소리로 천주학을 반대하였기 때문에 다시는 하지 않았다고 문초기록에 나타나 있다.


 


(28) 성소사


  최소사의 따로 그의 모친의 진술과 같다.


 


(29) 오소사


  혁동에 살던 노대의(盧大義)의 처였다.


  신유년 정월에 자수아였다가, 2월 14일에 다시 체포되고 15일에 풀려났다.  오소사는 당을 파는 일을 하였다.  동네에 사는 오호문의 아내 한녀가 천주교로 유인하였다고 한다.  그녀가 한녀의 말을 들은 것은 "만일에 천주학을 하면 자식이 없는 여자는 자식을 갖게 되고 사후에 극락세계에 갈 수 있다"고 해서 무식한 까닭에 믿게 된 것인데, 그 남편과 부모가 엄금하므로 이제는 버리고 하지 않는다고 했다.


 


(30) 김소사


  전동에서 살았고, 신유년 3월 18일에 자수하였다가 5일에 풀려났다.


  김소사는 남편과의 사별 후에 신세가 비참하고 고통스러워서 조봉상의 딸에게 천주교 서적을 얻어 보았는데 이 일 때문에 시가의 조카 진희성과 시숙이 집에서 쫓아내었다.  그후 조씨 딸의 집에서 1년이상 머물러 살았는데, 조씨 딸이 포청에 잡혀가 버린 후 슬프고 몹시 겁이 나고 의지할 데가 없게 되자 다시 시숙의 집에 들어가서 천주학을 영원히 끊겠다고 말하였다.  이에 시숙은 만약에 그렇다면 포청에 자수하여 법의 처분에 따르라고 하여 이렇게 왔다고 말하였다.


 


(31) 신소사


  죽은 참판 이중복의 첩이었다.


  신유년 3월에 체포되어 18일 신지도로 유배되었다.  신소사는 본래 조예산의 집안과 친지이며, 1801년 봄 한소사의 거처에서 천주교의 교리서를 받아 처음으로 읽기 시작하였는데, 그 책은 조만과(아침저녁 기도)가 실린 작은 책 3권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집안에서 엄금함으로 그 책을 태워 버렸다고 하며(1800년 정월) 성화와 성물을 가지지 않았다고 하였다.  그녀는 과부라서 죽은 뒤에 천당간다는 말을 전심을 믿고 천주교에 귀의했었다고 문초기록에 나타나 있다.


 


(32) 이소사


  홍정호의 모친으로 서울 수색 사람이며 홍종박의 달이다.  신유년 11월 23일 서양 그림 한 폭을 지녔다 하여 잡힌 죄인으로서 나이가 70이 넘으므로 형벌을 면제받았다가, 12월 20일 진주로 유배되었다.


  그녀의 문초기록에 의하면 그녀는 본래 사술교주의 모친으로써 그 아들이 정형(참수)을 받을 때 혼자서 눈물을 흘리고 울었으며, 옛 습관을 고치지 않고 여인들의 모임에 깊이 빠져서 그러한 생활을 계속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미 분례의 문초기록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그후 서울로 이사해서도 이를 혼자서 행하였다.


  이소사는 자신의 집에 바느질하는 이를 한 사람을 두었는데, 그 여자가 바로 순이이다.  그녀는 홍문갑의 집과 왕래하면서 천주교의 설교에 이끌려 들어갔다.  따라서 그의 아들도 같이 들었으며, 처음에는 한어로 설교하였기 때문에 잘 알아들을 수 없어서 미혹되는 일이 없었다.  또한 그녀는 "아들이 이미 천주학 때문에 참형되었는데 내가 어찌 감히 양화를 발명하겠는가.  본래 집에 보존된 물건으로 알지 못하는 사이에 걸어 놓았던 것이며 천주교에 관계되는 것이므로 집에 두어서는 안되겠다"라 생각하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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