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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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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유박해 때 여자노비들의 활약과 그 신앙생활-1 날짜 2006.02.20 11:38
글쓴이 관리자 조회 665

  한국 천주교회사의 초기단계에 있어서, 노비들의 천주교 입교와 신앙생활이 나타내었던 활력은 여러 가지 자료에서 풍부히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그러한 문제에 대해서 그 누구도 언급한 바없었다.  하지만 노비들의 천주교 입교는 부녀자들의 신앙 활동이나 종교를 통한 사회 활동과 함께 봉건적 조선 양반 사회의 질서에 대한 일대 도전이었다.  따라서 당시 노비들의 천주교 입교와 신앙생활에 대한 검토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것으로 생각된다.


  조선 사회에서의 노비들은 인격체로서 대우받지 못하는 일종의 상품적 존재였다.  이러한 노비들은 종모법에 따라 대대로 노비가 되거나, 기아나 국가에 대한 모반으로 인해, 또는 반역죄인의 가족이라는 이유나 가난으로 인한 인신매매로 노비가 되었다.  특히 여성인 비에는 국가나 관아에 속해있는 관비와 개인에 속해있는 사비로 나눌 수 있고, 사비에는 몸종과 가비가 있었다.  이들은 일단 적에 올려지면 대대로 노비의 신분을 면치 못하게 되어 있었다.


  어느 시대나 다 그러하겠지만 특히 조선시대에 있어서 여자 노비들은 생명이나 자기 정조를 보장받지 못하였다.  그들은 상전으로부터 농락당하기가 일쓰였으며, 여상전으로부터는 투기에 의하여 사형을 받거나 살해당하기까지 하는 예가 허다하였다.


  사족가 부녀자들이 비첩이나 사비를 살해하는 까닭은 대개가 공통되었다.  즉 그들은 대체로 질투 때문에 여자 노비들을 살해하였던 것이다.  당시의 법률에 따르면 투기로 인하여 노비를 살해한 부녀는 곤장으로 다스려서 유배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는 법과와 달리 장형을 가한 예가 들물며 대개는 남편에게 그 책임을 묻고 또는 속죄의 형식으로 다스렸다. 


  실제적으로는 이렇게 양반의 노비살해를 인정한 것과 마찬가지였으며, 따라서 노비들은 어떠한 적당한 이유도 없이, 다만 여상전들의 질투에 의해서 목숨을 잃기도 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비첩이나 비의 살해는 온갖 잔인한 방법으로 육체에 고통을 주어 사형을 가하고, 마지막에는 토실이나 광에 가두어 놓고 음식을 주지 않아 굶어 죽게 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은 예는 얼마든지 많았다.  결국 여비의 신분으로서는 상전에 대하여 자신의 절개도 지킬 수 없었으며, 더 나아가 그 본 부인인 양반 부녀자들의 손에 하나 둘 목숨까지 잃어 갔던 것이다.


  실제로 양반 부녀자들은 자신의 집에다가 형구를 준비해 놓고 상인이나 노비에게 함부로 형벌을 가하여 살해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조선사회에 천주교가 유입되고 그 교의 만민평등사상을 인식하게 된 남인 양반들이나 사대부 부녀자들은 자신들이 거느리고 있던 노비들에게 가능한 범위내에서 천주교의 교리를 의식적으로 가르쳐서 그들을 입교시켰다.그것은 천주교에 입교했던 교우들이 노비들을 정상적인 하나의 인간으로 인정하는 의식과 인간이면 누구나 천주의 한 자녀이므로 만민은 평등하다는 의식을 가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노비들의 영혼을 구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의식을 가진 천주교도 양반들은 노비들을 인격적으로 대우했을 뿐만이 아니라 첨례일에는 양반들과 나란히 앉아 강론을 듣게 하고 첨례와 송경에 참여시키는 등 평등정신을 철저하게 실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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