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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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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김한빈(1763~1801 베드로) 날짜 2005.09.30 14:14
글쓴이 관리자 조회 391
김한빈 베드로는 충청도 보령 고을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생애에 대하여 자세히 기록한 문헌이 없으므로 성장과정이나 입교과정, 그리고 입교후의 생활이 어떠했는지는 자세히 알 수가 없다. 다만 그가 박해의 위험을 무릅쓰고 황사영(알렉산델)을 도와 함께 활동한 사실이 특별히 나타난다.
입교한 후 자신의 신앙생활에 열중하던 베드로는 어느 시기에 고향을 떠나 일시적으로 홍주 고을에서 생활하였다. 그러던 중 1800년(정조 24년) 9월에는 서울로 올라와 정약종(아우구스띠노)의 집에서 행랑살이를 하며 사냥으로 생계를 유지하였다. 어떤 기록에는 그가 서울에 머무르는 동안 군인직업을 가졌으며, 이에 사람들은 김포수(金砲手)라 불렀다고 한다.
당시 황사영 알렉산델은 충청도 제천 고을의 배론이라는 동네에서 생활하고 있었는데, 베드로는 동료 황심(토마스)과 협력하여 서울 등지를 돌아다니면서 그에게 여러 가지 교회의 상황과 박해의 추세를 알려주는 한편, 교회서적을 강론하며 신앙생활에도 열심하였다.
1801년 7월 12일(음력 6월 2일), 베드로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제천의 장에 나갔다가 서울 포졸들의 눈에 띄어 체포당하였다. 그러나 원주의 안창이라는 곳에 다다랐을 때, 포졸들이 술에 취하여 잠을 자는 사이에 도망하였다. 이때 황사영은 북경 주교에서 보내는 [백서]를 작성하여 황심(토마스)과 옥천희라는 교우로 하여금 전달하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옥천희와 황심이 체포됨으로 하여 일은 발각되었으며, 그 결과 베드로는 황사영과 함께 배론에서 체포되기에 이르렀다.
옥에 갇힌 후 베드로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기록에서 보이지 않는다. 다만 다른 교우들에 대한 기록에서 미루어 볼 때, 그는 마음을 굳게 가지고 신앙심을 지켜서 순교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금부의 결안에서는 당시 [백서]가 북경에서 전달되리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숨기고 있었다는 죄목으로 그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것으로 되어있다. 이리하여 마침내 베드로는 황심 토마스와 함께 서소문 밖에서 참수되었으니, 이때가 1801년 11월 8일(음력 10월 23일)로 그의 나이는 38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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