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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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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김백심(?~1802 시몬) 날짜 2005.09.30 15:07
글쓴이 관리자 조회 378
'계완(啓完)'이라고도 불리었던 김백심(그의 漢子名을 百深이라 적은 기록도 있다) 시몬은 서울 서소문 밖에 살던 양반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렸을 때 행적이나 집안환경에 대하여는 어느 문헌에도 나타나 있지 않다. 그러나 문초기록에서 볼 때 그는 1791년(정조 15년)에 최필공(토마스)으로부터 천주교에 대하여 들은 후 즉시 입교하여 열심히 교리를 봉행하였다고 한다. 이후 그는 최창현, 정약종, 이합규, 이희영 등의 교우들과 함께모여 천주교 서적을 공부함으로써 신앙심을 굳혀 나갔다.
그러던 중 주문모 신부가 조선에 입국하여 정약종의 집에 머무르자 그 집에 수 차례나 왕래하며 신부로부터 강론을 듣기도 하였다. 그리고 얼마후에는 신부를 모시면서 여러 가지로 보살펴 드리며 생활하게 되었는데, 이 시기에 그는 신앙을 더욱 굳게 하고 훌륭한 덕을 닦을 수가 있었다.
1801년에 신유박해로 교우들이 각처에서 체포당하고, 자신도 그 대상에 올라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시몬은 교우들과 함게 이곳저곳으로 피해 다니며 생활하였다. 이때 강완숙의 인도로 황사여, 이합규 등과 함께 여교우 김연이의 집으로 일시 피신하였다가, 다시 여러 교우들의 집으로 옮겨 다녔다고 한다. 그렇게 숨어서 생활하던 중 그는 부친이 자기 대신으로 포청에 갇혔다는 소식과 함께 가족들도 몹시 시달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에 그는 소식을 확실히 알기 위하여 한성호의 집으로 갔다가 포졸들에게 체포되기에 이르렀다.
포청으로 압송된 시몬은 즉시 포장으로부터 신문과 문초를 당하였으나, 이에 굴하지 아니하고 신앙을 증거하기에만 열심이었다. 이때 가족들이 그를 석방하여 달라고 몰래 갖다준 돈을 받은 포장은 일시적으로 그를 석방하여 주었다고 한다.
사흘이 지난 후 포장은 다시 시몬을 불러다 놓고, "이제 마음이 변했느냐? 다시는 그 사악한 종교를 믿지 않겠지?" 하고 물었다. 이에 그는 "저는 전보다 더욱 천주교를 열성적으로 신봉할 것을 결심하였습니다."라고 답하여 자신의 신앙심이 확고하다는 사실을 밝힐 뿐이었다. 포장은 화가나서 그를 여러 차례 신문하고 형벌을 가하여 배교와 밀고를 강요하였지만, 그는 조금도 나약한 표시를 나타내지 않았다.
그후 형조로 이송된 그는 포청에서와 같은 신문과 형벌을 받고는 사형으로 결안(結案)이 확정되었다. 그리하여 여러 교우들과 함께 참수되어 순교함에 이르렀는데, 때는 1802년 1월 29일(음력 1801년 12월 26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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