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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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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홍익만(?~1802 안또니오) 날짜 2005.09.30 15:15
글쓴이 관리자 조회 415
홍익만 안또니오는 서울의 송현에 살던 양반집안에서 태어났다. 본래는 유학을 공부하였으나 1785년(정조 9년)에 조선 최초의 순교자인 김범우(토마스)로부터 [천주실의]를 얻어 봄으로써 천주교를 접하게 되었다.
이때 천주교의 가르침이 자신이 배운 유학의 도리와는 크게 다른 점이 있음을 알게 되엇으며, 다시 1794년(정조18년)에 중국에서 전래된 서양서적을 읽고 나서는 그 기피은 뜻에 놀라게 되었다. 이해에 그는 이가환, 이승훈, 정약종, 황사여 등과 함께 교리를 강론하고 마침내는 천주교의 의식에 따른 영세를 받기에 이르렀다.
그러던 중 주문모 신부가 조선에 입국하게 되자, 안또니오는 신부를 자기 집에 모시면서 보살펴 드리고 첨례에 참가하여 교리를 배우기도 하였다. 당시 그의 집은 폐궁의 후문과 통하여 있었으므로 신부는 그 문을 통하여 궁궐로 들어가 송 마리아와 그녀의 며느리 시 마리라는 왕족에게 영세를 줄 수가 있었다.
한편 안또니오는 여러 교우들과 서로 왕래하면서 교회의 일을 돌보고 신앙심을 더욱 굳게 하였으며, 홍필주(필립보)와 이 현(야고보) 등을 사위로 삼기도 하였다. 훗날 이 사위들은 그보다 앞서 신앙을 증거하고 순교의 영광을 얻었다.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 여러 교우들이 체포될 때 안또닝오는 경기도 여주에 있는 숙모의 집에서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에 그는 양근과 여주를 왕래하면서 박해를 피하다가, 그 후 다시 이천 지방으로 옮겨 생활하던 중 체포되기에 이르렀다.
체포된 후 그는 포청과 형조로 거치면서 배교와 밀고를 강요하는 형벌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아무런 사실도 말하지 아니하고 끝까지 신앙심을 지켜서 마침내는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리하여 여러 교우들과 함께 형장으로 끌려가 참수를 당하게 되었으니 때는 1802년 1월 29일(음력 1801년 12월 26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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