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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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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유박해 때 동정녀들의 취회(여교우공동체) 활동-2 날짜 2005.10.19 14:09
글쓴이 관리자 조회 474
더 나아가 그렇게도 철저했던 주자가례적인 규범이나 인습제도 등 다방면에 걸쳐 그 사회질서를 흔들리게 하고, 양반사회의 가부장적 구조를 뿌리째 흔들 수 있었던 저항력을 가졌었기 때문에 이들 천주교에 입교한 여인들의 활약상은 매우 특출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이유로 해서 당시 양반이나 유학자들은 대경실색하여 이들을 색출하면서 박해하는데 혈안이 되었다. 그들을 고혹시킨 이 천주교를 '사학지도'혹은 '금수의 종교'라 단정지어 여기에 빠진 천주교 신도들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짐승처럼 다루었던 것이다. 모든 관찬기록 등에서도 '고혹사도(蠱惑邪道)'란 말은 당시에 체포되어 문초를 받았던 모든 천주교 신자들에게 하나의 죄명으로 사용되었던 것을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당시 사회여건에도 불구하고 천주교를 믿었던 처녀들은 동정을 지키면서 하나의 조직체를 만들어 공동체를 형성하였다. 그들은 공동생활을 했으며 선교활동이나 그 이외에 여러 가지 교회 집회활동을 하였다. 또한 신심 및 기도생활도 나타나 있어 개개인의 삶의 양상이나 형태도 알 수가 있다.
한편 우리가 유의할 것은 앞에서 기록되어 있는 동정녀들의 명단이 당시 여교우의 전부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사학징의]에 올려져 있는 명단은 그 당시 체포되었던 여교우들에 한해서만 기록된 것이고 피신했던 여교우들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는 것이며, 체포된 여신도들도 진술시에 가능하면 그들의 동료들에 대해서는 허위자백을 많이 하였기 때문에 이러한 명단에서마저도 빠져버린 동정녀들도 있었다는 것을 감안해야 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 관계의 유일한 사료인 [사학징의]도 현재 영인본(影印本)으로 나타난 것은 본래 4권인데 지금까지 두 권 밖에 우리가 볼 수 없다는 사실도 감안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 나타난 명단은 극히 제한된 것으로써 당시에 체포되어 문초를 받았던 죄인 중에도 그 이름이 나타나지 않는 동정녀들이나 여교우들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 다른 문제점은 관찬기록에 기록된 이들 체포된 여교우들의 이름은 본래의 성명이 아니라는 것이다. 달레의 [한국 천주교회사]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당시 조선시대 여성들에게는 성명이 없었으며, 따라서 이들 사학죄인들의 이름은 당시 재판관들이 편리에 따라서 세례명처럼 붙여졌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한다.
즉 관찬기록에 기록된 여교우들의 이름은 당시의 재판관들이 다만 형벌을 가하고 재판을 하기 위해서 그녀들에게 지어 주었던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나마도 그들의 성은 없고 대개 이름만 있기 때문에 대부분 부친의 성을 따라 그 이름에다 성을 붙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너나 대체적으로 이들은 사형선고를 받는다든지 부끄러운 형에 처해졌을 때만 받았던 이름인 것으로 천주교의 여신도들의 성명은 분명히 아님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명단에서나마 비교적 정확하게 나타나 있는 동정녀 순교자에 대하여 좀 더 구체적으로 그들의 행적을 고찰해 보기로 하겠다.

(1) 동정녀 윤점혜(아가다)
(2) 궁녀 문영인(비비안나)
(3) 동정녀 정순매(바르바라)
(4) 동정녀 이득임

이합규의 누이동생을 동정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과부라고 하였다. 신유년에 박해가 일어나자 체포되어 그 해 4월 9일 장흥으로 유배되었다.
그녀는 포청에서 혹독한 주뢰셩을 받으면서 다음과 같이 입교 경위를 고백하였다.
그녀는 남편이 죽은 지 3년이 된 나이 어린 과부의 몸으로 의탁할 곳이 없게 되자 벽동(碧洞) 정광수의 동생인 허가의 처 정바르바라에게 신세를 지면서 천주교를 잘 배웠다고 하였다. 그녀는 1800년 겨울에 안면이 있는 사람이 천주교 서적을 가지고 자신을 찾아와서 그녀 자신의 처소에서 그것을 가지고 천주교를 배우기 시작했으며, 이 때 천주교에 깊이 빠졌던 것이다. 또 춘득의 모친인 노비 복점과도 서로 친하게 지내며 기도를 함께 하고 교리를 배워 익혔다.
그녀는 나이가 어리고 부끄러움을 많이 타서 왕래하는 사람은 별로 없으나 천주교에 대한 깊은 신앙은 지금(체포된 뒤)도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그녀는 고의적으로 동정녀인데도 과부라고 허워자백을 한것이며, 끝까지 신앙을 버리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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