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으로  |  회원가입  |  로그인  |  사이트맵
회원가입  |  아이디/비밀번호찾기
일반자료실
일반자료실
제목 고광성(?~1801) 날짜 2005.09.26 10:35
글쓴이 관리자 조회 372
고광성은 1839년(헌종 5년) 12월 29일(음력 11월 24일)에 순교하여 성인의 자리에 오른 고순이(발바라)의 부친으로 황해도 평산지방에서 양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기록상으로는 그의 집안에 대한 사정이나 어렸을 때의 행적 등에 관하여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다만 문초기록에 나타난 사실로 볼 때, 그는 1800년(정조 24년) 겨울에 손인원이라는 교우로부터 처음으로 천주교를 배워 입교하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입교한 후 그는 곧 천주교 서적을 열심히 읽고, 교리의 본분을 행하고자 신주를 불사르고 제사를 폐하여 버렸다. 이러한 일로 인하여 그는 곧 체포되어 관아에 투옥되었다.
체포된 다음 그에 대한 신문 내용이나 형벌의 상황을 적은 기록은 보이지 않지만, 그가 지방 관아에서 배교하지 않았기 때문에 서울로 이송되었으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처음 포청으로 이송되어 보다 가혹한 형벌을 받게 되자 그는 일시적으로 배교를 하였다. 이때 열성적인 교우 이국승(베드로)이 고광성이 갇혀 있는 옥으로 끌려오게 되었는데, 그는 열심히 광성을 권면하기도 하고 나무라기도 하여 배교를 취소하도록 하였다. 베드로는 광성을 보고는 "배교한 것은 자네 자신이 아니고 마귀가 자네를 속여서 말하게 된 것이라고 포장에게 이야기하도록 하게"라고 여러 차례 권고하였다. 이런 권고를 받은 이광성은 자신이 배교한 것을 철회하고 다시 가해지는 신문과 형벌을 달갑게 받아들였다. 이제 그는 절대로 나약한 표를 나타내지 않았을 뿐더러 신앙심을 잃는 말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마침내 형조로 옮겨져 사형선고를 받으니, 그 집행예정일은 1801년 7월 2일(음력 5월 22일)이었다. 그러나 조정에서는 그를 고향인 평산으로 이송하여 처형함으로써 지방민들에게 위협을 주려고 하였다. 평산으로 옮겨진 광성은 여러 사람이 모인 가운데서 도끼로 참수를 당하였으며, 그의 순교일은 대략 7월 7일(음력 5월 27일)이었다.
목록 쓰기
개인정보보호정책  |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  이용약관
서울특별시 중구 필동 10번지 충무빌딩 313호    Tel:02-2269-2930    Fax:02-2269-2932    Email:wonjuse@hanmail.net
COPYRIGHT DOMAHOE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