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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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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보현(1768~1801 프란치스꼬)-2 날짜 2005.07.15 11:09
글쓴이 관리자 조회 408
프란치스꼬가 해미 영장 앞으로 끌려가자, 영장은 그를 배교시키고 밀고하도록 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신문하였다.
"무슨 이유로 네 부모와 조상들의 산소를 버리고 5백 리나 되는 다른 고을에 가서 살았으며, 또 어찌하여 그 고약한 종교를 따름으로써 국왕이 금하는 짓을 하느냐?"
이에 그는 "임금님과 관장들이 알지 못하는 성교(聖敎)를 어찌하여 그렇게 모욕하십니까? 사람의 기원이 어디에 있습니까? 사람의 기원은 그들을 태초에 창조하신 천주로부터 이루어진 것인데, 어떻게 우리의 대군(大君)대부(大父)이신 천주를 공경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반문하면서 창조주이신 천주를 공경해야만 한다고 설명하였다.
영장은 "국왕과 관장들이 무식하다고 하니, 그래 그분들이 너만 못하단말이냐? 그리고 또 무엇 때문에 외국의 도를 따른단 말이냐? 그 도리가 옳은 것이라면 너만 못하지 않은 국왕과 관장들이 그것을 신봉할 것이다. 너는 근본을 무시한 대역 죄인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한 다음 형리들을 가까이 오라고 하여 갖가지 형틀을 준비시키며 "모든 것을 숨김없이 고백하라"고 성난 말투로 외쳤다.
그러나 프란치스꼬는 이를 거절하고 형벌을 받으면서 "어느 곳에나 선생과 제자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대면 저처럼 다루실 것이니, 제가 죽을지라도 말할 수가 없습니다."라고 굳은 의지를 표명하였다. 성이 잔뜩난 영장의 부추김을 받아 형리들을 더욱 잔인하게 여러 번 주리를 틀었으나 헛일이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고문을 한나절 이상이나 가하여 프란치스꼬는 여러 번 가무러쳤지만 굴복하지는 않았다.
마침내 그에게는 큰 칼이 씌워지고 다시 옥으로 이끌려 가게 되었다. 비록 그는 온몸이 상처투성이였지만 마음은 만족스럽고 기뻐서 기도를 드리며 함께 갇힌 다른 사람들을 격려하고, 그가 늘 하던 대로 예수 그리스도가 받은 수난의 신비를 그들에게 설명하였다.
두 번째 신문 때 영장은 처음부터 무서운 형구를 늘어놓고 그에게 말하였다. "이번에는 네가 피할 수 없으니 모든 것을 고백하고 천주를 배반하라." 그러나 프란치스꼬는 "왜 그런 말씀을 또 하십니까? 신민(臣民)이 자기의 임금님을 배반하면 그에게 벌을 주십니까. 상을 주십니까? 사또께서는 임금님의 녹을 받으시니 저를 법대로 다스리십시오"라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말로 꿋꿋하게 버티었다. 이렇듯 끈기가 있는 태도에 몹시 놀란 영장은 이제 감사에게 보고를 하며 어떻게 해야 할지를 물었다.
며칠 후 감사는 프란치스꼬가 아무 것도 고백하지 않겠다면 매를 쳐서 죽이라는 답을 보냈다. 그리하여 그는 다시 진영에 끌려가서 갖은 고문을 당하였다. 마침내 그에게서 아무 것도 얻어내지 못하게 되자 영장은 그에게 선고문을 내주었다. 그는 기쁜 표정으로 그것에 서명을 하였으며, 이를 지켜보고 있던 모든 사람들은 놀라서 서로 쳐다볼 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였다 한다. 다시 옥으로 끌려 간 그는 다음날 사형수에게 주는 음식을 먹으며 순교하게 됨을 기쁘게 생각하였다.
망나니들은 장터에서 그를 조리돌린 후 장형(杖刑)을 가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각기 거적을 앞치마 모양으로 앞에 두르고 오랫동안 힘을 다하여 프란치스꼬를 매질하였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마지막 숨을 거두지 않았다. 이에 망나니들은 그를 자빠트려 놓고 몽둥이로 그의 국부를 때려 순교하도록 하였으니, 이때가 1801년 12월 15일로 프란치스꼬의 나이 27세였다.
며칠 후 교우들이 그의 시체를 거두었는데, 그 얼굴은 아주 생생하고 웃음을 띄고 있었으며, 이러한 그의 모습을 보고 여러 외교인들이 입교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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