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으로  |  회원가입  |  로그인  |  사이트맵
회원가입  |  아이디/비밀번호찾기
일반자료실
일반자료실
제목 현계흠(1762~1801 베드로) 날짜 2005.07.15 11:18
글쓴이 관리자 조회 381
현계흠에 대하여 자세히 서술한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그의 성장과정이나 입교과정, 그리고 잡안사정이 어떠하였는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그가 천주교에 입교한 후 여러 교우들과 상호 연락을 취하면서 교회의 일을 보살피는 데 열성적이었으며, 특히 황사여의 [백서]사건에 깊이 관계했다는 기록이 보일 뿐이다. 그러나 1839년의 기해박해 1846년 병오박해때 각각 순교한 현경련(베네딕다)과 현석문(까롤로)이 그의 자녀들로 뛰어난 신앙심과 열성을 보임으로써 마침내 성인의 자리에까지 오르는 영광을 얻게 된 사실은 바로 현계흠의 신앙심이 면면히 어어져 형성된 것이라 할 것이다.
현계흠은 중인 계급에 속하는 역관 집안 출신으로 서울 장흥동에서 태어났으며, 이름은 '사수'라고도 하였다. 1797년(정조21년)에는 동래의 용당포에 얼마동안 정박하였던 영국 함선에 올라간 본후, 그와 같은 배 한 척만 있어도 조선의 전함 백 척 이상을 쉽게 격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여 비난을 받았다고 한다. 그후 1800년 무렵부터 황사영, 황심, 김한빈, 옥천희 등과 친밀히 지내면서 교회의 일을 돌보던 그는 이듬해 신유박해를 당하여 체포되기에 이르렀다.
처음에 박해를 피하여 지방으로 도망하였던 현계흠은 자신의 도피로 인하여 려러 일가친척들이 괴로움을 당한다는 사실을 전하여 들운 후, 곧 관아로 가서 자수를 하였다. 관리들은 이미 그가 천주교인으로서 황사영이 꾸민 음모에 깊게 관련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이에 의금부로 압송된 그는 심한 고문을 당했지만, 굳건한 용기로 신앙을 증거하며 누구를 고발하거나 신앙심에 위배되는 말은 한 순간도 하지 않았다.
이리하여 사형선고를 받고 황사여, 옥천희와 함께 참수를 당하여 순교의 영광을 얻었는데, 때는 1801년 12월 10일(음력 11월 5일)로, 그의 나이는 39세였다.
목록 쓰기
개인정보보호정책  |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  이용약관
서울특별시 중구 필동 10번지 충무빌딩 313호    Tel:02-2269-2930    Fax:02-2269-2932    Email:wonjuse@hanmail.net
COPYRIGHT DOMAHOE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