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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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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원경도(1773~1801 요한) 날짜 2005.07.19 13:24
글쓴이 관리자 조회 357
원경도 요한은 경기도 여주가 고향으로 어렸을 때에는 외교인으로 생활하였으나, 성장하여 김건순(요사팟)의 인도로 입교한 후부터는 남다른 열성을 가지고 본분을 지킨 사람이었다. 신앙의 진실을 알계 된 요한은 당시 여주 지방의 열성적인 교우들과 자주 연락하면서 교회의 일을 돌보고, 한편으로는 그들과 함께 모여 신심생활을 위한 행사를 갖기도 하였다.
1800년(정조 24년) 3월, 요한은 가까운 친척 이중배(마르띠노)와 함께 친구 정종호의 집으로 부활축일을 지내러 갔다. 요한은 그 집에 모인 여러 교우들과 길가에서 큰소리로 기도를 드리며 노래를 부르고 기쁜 마음으로 감사를 드렸다.
이러한 신심의 행사와 즐거운 잔치로 그 날을 지내고 있을 때, 외교인들의 밀고로 이 사실을 안 고을의 수령이 포졸들을 보내어 그들을 체포하도록 하였다. 요한과 동료들은 즉시 체포되어 관아로 압송당하였다. 길을 가는 동안 요한의 집을 지나게 되었을 때, 그의 늙은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며 포졸들에게 다가와 자기의 아들을 잠깐이라도 만나게 하여 주도록 청하였으나 그 요청은 허락되지 않았다.
요한의 일행이 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관장은 그들을 향하여 "너희들의 공범자와 너희들을 유혹한 자의 이름을 대고, 천주를 배반하도록 하아"고 말하였다. 이에 요한은 "저는 천주교에서는 어떤 사람을 밀고하는 것이 엄금되어 있으므로 절대로 다른 사람을 밀고할 수는 없습니다. 더구나 천주를 배반하는 일은 절대로 할 수 없습니다."라고 명백하게 배교와 밀고를 거절하였다. 관장이 성이 나서 주리를 틀고 주장(朱杖)을 가하도록 명령하였으나, 이중배 마르띠노의 용기와 격려에 힘입어 모두 혹독한 형벌 속에서도 굳건히 신앙을 증거하였다.
그들이 옥에 갇혀 생활하고 있었을 때 임희영이라는 사람이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그와 함께 있게 되었다. 6개월 이상이나 갇히어 있으면서 요한은 동료들과 함께 한 달에 두 번씩 관장 앞에 출두하여 신문을 받고 점점 더 심한 형벌을 당해야만 하였다. 이 거듭되는 형벌로 온통 헤어진 그의 몸이 여러 번 기적처럼 나았었다고도 전한다.
그의 가족은 그의 마음을 움직여보려고 애썼으며, 늙은 여종을 자주 보내어 모친과 아내의 실상을 몹시 슬프게 전하기도 하였다. 하루는 여종의 이야기를 들은 그가 다른 때보다도 더 마음이 흔들리는 것처럼 보였는데, 이때 이중배 마르띠노가 옆으로 와서 그 늙은 여종을 무서운 눈으로 쳐다보자 그녀는 겁에 질려 달아났다고 한다. 그는 이후 10월결에 이르러 감사로부터 다시 신문과 형벌을 받는 시련을 겪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 요한과 동료 교우들은 감사의 권한을 벗어나 서울로 압송되기에 이르렀다. 이미 여러 차례 지방 관아로부터 보고를 들은 금부의 관리들은 곧 결안을 확정하고, 여주의 지방민들에게 위협을 가할 목적으로 그들 모두를 고향으로 다시 이송하여 사형을 집행하도록 하였다. 이리하여 요한은 동료들과 함께 고향 여주의 성밖에서 참수되어 순교에 이르렀는데, 이때가 1801년 4월 25일(음력 3월 13일)로 그의 나이는 28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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