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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진신부님
김영진신부님
제목 감자 두 알의 무게 날짜 2005.03.04 17:34
글쓴이 관리자 조회 606
** '참 소중한 당신'이라는 책에 김영진 신부님께서 쓰신 글이기에 올립니다.

시골 본당에는 다행히 공소라는 곳이 있어서 좋다.
신자수가 10여 명 내외에서 몇 십 명 되는 곳도 혹 있지만 대개는 외형적인 건물에서부터 초라하기 그지없다. 그러한 곳에서 대대로 신앙을 지켜 오신 허리 굽은 노인들을 만나면, 내 어릴 적 순수한 신앙을 만나기에 나는 좋다.
명색이 신부라고 하지만 세상 살다 보니 때가 많이 묻어 있는 것을 그분들 앞에 가면 숨길 수가 없다. 요즘 같은 사순절이 되면 어린 시절 사순절을 부내던 때와 지금 사순절을 보내는 때와 거리가 꽤 멀어 있음을 보며 어린 시절 했던 신앙생활을 시도해 보곤 한다.
사순절이 되면 공소 회장 아들인 나는 아버지 명령으로 밤마다 1km 떨어진 공소에 가서 대포 껍데기를 종처럼 매달아 놓은 것을 망치로 때리고 호야 불을 켜놓고 빗자루로 공소 안팎을 쓸었다. 저녁상을 물리고 공소로 오신 교우들과 함께 저녁 만과와 십자가의 길과 묵주의 기도를 매일같이 바쳤던 어린 시절에 비하면, 또 매주 금요일마다 단식과 금육을 하고 주일이면 30리가 넘는 본당세 미사하러 새벽같이 눈꼽을 떼어내며 출발하던 일을 생각하면 지금의 나와 거리가 있음을 본다.
그런데 그러한 신앙의 맛을 지금도 공소에 가면 그때처럼은 아니라도 그 맛을 보고 그 향기를 느끼게 된다.
신자 숫자는 손가락을 헤아릴 정도로 적고 건물은 기울어져 가지만, 그곳이 내 신앙의 탯줄인 것을 묵상하며 이런저런 묵상과 체험을 하게 된다.
한번은 공소가 여섯 곳이나 되는 시골 본당에 있을 때 이런 일이 있었다. 어느 일요일 오후 공소에 도착한 나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급히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한 달에 한번 드리는 미사 시간이 이미 지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때 마침 허리 굽으신 할머니 한 분이 내 옷자락을 끌며 재래식 화장실 뒤편으로 끌고 가셨다.
마음이 급했던 나는 "왜 그러세요, 왜 그러세요" 하며 물었지만 할머니는 대꾸도 하지 않으셨다. 화장실 뒤편에서 멈추신 할머니는 몸쩨 바지 허리춤 속을 훌렁 내보이시며 "신부님, 내가 이웃집 감자 캐러 갔다 이속에다가 감자 두 알을 훔쳐 가지고 왔어, 글쎄" 하시는 게 아닌가!
나는 마음이 급한 나머지 "할머닌 뭘 그런 걸 가지고 신경 쓰세요. 그런 건 잘못도 아니고 죄도 아니니까 얼른 안으로 들어가세요"라면서 먼저 공소로 달려갔다.
미사를 봉헌하면서 생각이 났다. "아하! 할머니는 감자 두 알의 무게를 느끼시어 한 달에 한 번 오는 나를 기다렸다가 고해성사를 보신 게구나. 그런데 나는 그런 것은 죄도 아니고 잘못도 아니라고 말씀드렸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할머니의 양심과 내 양심을 저울질하며 부끄러움을 느꼈다. 사실 따지고 본다면야 수천, 수억 원씩을 부정 축재하고 도둑질하고도 난 잘못이 없다고 하는 세상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감자 두 알을 몸뻬 속에 감추어 가지고 온 것이 무슨 대수이겠는가?
그러나 감자 두 알 때문에 긴긴밤을 설치며 괴로워했던 그러한 양심이 있어 세상은 정화될 수 있는 것이고, 하느님 앞에 깨끗한 영혼으로 살고 싶은 그러한 영혼이 있어 사람은 더욱 아름다운 것이다.
성당마저도 물질적인 숫자의 높낮이가 척도처럼 되어 헌금이 많고 신자수가 많으면 큰 성당이요, 시골의 작은 성당에서 신자수 많은 도시 성당으로 인사 발령될 경우 주교님이 점수를 준 것처럼 생각한다면 몇 안 되는 시골 공소의 교우들과 그 교우들 안에 살아 있는 깨끗하고 아름다운 신앙은 어디에다 발을 붙일 것인가?
웬일인지 모르겠으나 금년의 사순절은 여느 때보다 좀 시들시들한 느낌이 든다. 몇 년 전 대희년을 맞아 각 교구마다 각 지역 성당마다 숙연해지며 이어지던 교회의 가르침들, 각종 교육, 피정, 프로그램들이 금년에 들어서서는 외형적인 것을 다듬는 형식으로만 느껴지는 것은 유독 나에게만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것인가! 또다시 사순절을 지낸다. 내가 찾아나서야 할 감자 두 알의 무게는 무엇인가! 내가 만나야 할 감자 두 알의 양심은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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