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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진신부님
김영진신부님
제목 사람은 감동으로 산다 날짜 2005.06.09 17:20
글쓴이 김영진 조회 590
사람은 감동으로 살아간다. 사람도 여타 동물과 같이 먹어야 하고 누려야 하지만 가장 먹고 싶고 누리고 싶은 것은 감동이다. 감동이란 육감적인 것과도 구분되지만 이성적인 것과도 구분된다. 물론 육감적이고 이성적인 것을 통하여 감동이 싹트고 자라지만 그러한 것들이 감동의 열매까지 맺어 주지 못한다.

감동을 적는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지만 그래도 감동 하나를 가슴에 심으려고 때론 눈을 감기도 하고 뜨기도 하며 시끄러운 곳을 피하여 조용하고 외딴 산자락 끝에 핀 작은 꽃잎 하나에 시선을 멈추어 보기도 한다.

오늘 아침도 하소리 뒷산 샘터에 다다라서 물 한 잔 마시기 전 감동 한 잔 마셔보려고 한쪽 귀퉁이에 놓인 긴 의자에 앉았다. 누군가 가져다 놓은 긴 의자엔 작은 나뭇가지들과 풀잎, 나뭇잎들이 아무렇게 널려 있다.

그 위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눈을 떴다 감았다 하니 마음은 신선이 주는 향기라도 맡은 듯 금세 속세를 잊어버린다. 아마도 이 맛에 스님들은 산을 따라 살고 깨닫고자 하는 이는 자연을 떠나지 못하는가 보다.

가지각색의 매연이 가득한 곳 즉 자동차때문에, 건물 때문에, 욕심 때문에, 일 때문에 오는 여러 종류의 매연이 가득한 곳에서 살면서도 색다른 감동을 잡아내며 살 수는 잇을 거시이다.

그러나 보라색을 띠고 산자락 여기 저기 아무렇게나 피어 있는 패랭이꽃을 바라보며 담아내는 감동은, 또 간 질환에 좋다 하여 수난을 겪고 있는 인진쏙이 세상 탓하지 아니하고 화전민이 일구어 놓은 밭둑길에 탐스럽게 자라 오늘도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한 손짓을 하는 모습을 보며 오늘도 내가 삶을 시작했고 잘 마쳐야 된다고 다짐과 희망을 새롭게 해주는 감동은 오래 묵은 된장 맛만큼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

얼마 전 동창 신부의 영명 축일에 축하 전화를 했는데 이런저런 안부와 소식을 전하다가 "행복하게 살아"하며 서로 전화를 끊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나는 행복합니다. 그대도 행복하세요"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인지 모르지만, 우리는 서로 이심전심 그 마음을 나누었다.

살아 계실 때는 물론이었지만 마지막 저승길 가시면서도 잔잔한 감동을 우리들 가슴에 심어 주고 가신 분, 그 잔잔함이 날이 갈수록 파도가 되어 우리 가슴에 넘치도록 닥쳐오는 것은 우리도 그처럼 감동의 사람이 되기를 바라시는 하늘의 뜻이 아니겠는가!

감동은 무엇일까! 나는 감동을 사랑이라는 단어가 폭발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주머니 속의 성냥 알이 부딪쳐서 뜨거운 불이 폭발되듯이 머릿속에 있고 이론 속에 갇혀있는 단어 '사랑'이 용틀임하며 숨을 쉬기 시작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국문학자나 철학자들이 들으면 웃을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내 마음속에는 그렇게 용해되었으면 좋겠다.

눈앞에 널려 있는 저 친구들! 논둑길과 밭둑길 그리고 산자락과 도랑 가에 널려 있는 송아지 풀, 토끼 풀, 질경이, 돌나물, 쑥갓과 이름도 알 수 없는 많은 종류의 잡풀들조차 폭발하여 나와 세상 안으로 다가오듯 나도 세상에 대한 두려움과 아집에서 벗어나 입 속에 갇힌 사랑이 용틀임하며 폭발하였으면 좋겠다.

"세상이 배고픈 것은 먹을 양식이 없어서가 아니라 사랑이 없어서입니다"라고 하셨던 마더 데레사의 말씀은 입 속에 갇힌 사랑이 아니라 용틀임하여 폭발한 사랑을 말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한 사랑만이 감동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오늘 하루만이라도 사랑 없는 몸을 파는 주점 창녀처럼 감동 없는 사랑을 하는 창부를 면하고 싶다. 아름드리 참나무는 키도 덩치도 크나 잎이 닭 벼슬만 한데 그 아래 여기저기 쪼그리고 앉아 있는 떡갈나무들은 키도 작고 덩치도 작지만 잎은 내 손바닥만큼 크다.

아른드리 참나무처럼 세상에서 출세하여 키도 크고 덩치 크면 무엇 하겠는가. 이기심에 젖어 입 속에 갇힌 사랑만 하고 있다면, 그래서 속세의 가치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말뚝에 코가 매인 송아지처럼 산다면 어찌 감동의 삶이 될 수 있겠는가.

가진 것, 배운 것, 누릴 것 없어도 한쪽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떡갈나무 잎처럼 세상을 향하여 풍성하고 넉넉하게 마음을 열고 산다면 그것이 사랑의 용틀임이 아니겠는가!

아침인데도 바람이 세게 불어대니 묵은 솔잎들과 참나무 수염 같은 긴 털들이 세상을 향하여 자신을 던져주는 것은 무엇이든 아름답고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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