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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진신부님
김영진신부님
제목 좋은 이웃이 되자 날짜 2006.05.23 11:27
글쓴이 김영진 조회 642

  어린 시절 나는 강원도 시골에서 살았다.  지금도 강원도가 시골을 대표하지만 내 어린 시절의 고향엔 하루 종일은 커녕 며칠씩 자동차 하나 볼 수 없었다.  오히려 하늘을 날아다니는 비행기는 이따금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 동네는 자동차는 없어도 비행기는 다닌다고 자랑한 적이 있다.  전화는 커녕 라디오, 시계 등 문명을 내세울 만한 것 하난 없었지만 소중한 것은 정 있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는 것이다.  자신을 위해서도 열심히 살지만 이웃을 위해서도 열심히 살 줄 아는 사람들 말이다.  자신의 바퀴만 굴리는 사람들이 아니라 남의 바퀴도 걱정하며 굴러가게 할 줄 아는 사람들이요.  자신의 소리만 떠들어대는 라디오 같은 사람이 아니라 이웃의 소리를 더 귀중하게 생각하고 대화와 관심과 사랑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아침이면 남의 집 앞은 물론 동네 신작로 길을 한참이나 쓸던 일, 내 논에 물 대면서도 남의 논이 말라 걱정되어 물을 나누어 대던 일, 씨 암탉을 한 마리 잡아 온 가족이 먹기에도 태부족인데 이웃에 혼자 사시는 할머니나 이웃집 어른들께 갖다 드리라는 어머니 말씀에 고사리 손으로 국그릇을 들고 쏟아질까 두려워 살금살금 걷던 일, 음력 설이 되면 인절미, 기계떡 등 가지각색의 떡 그릇을 여기저기 돌리면서 추위에 손이 시려 밭둑이나 길바닥에 떡 그릇을 놓고 가랑이에 손을 넣은 채 한참 비벼대며 찬 손을 녹이던 일, 이웃집에 모내기를 하고 논을 매고 타작을 할 때는 모두가 그 집 가족이 되어 함께 일하던 모습, 아이나 어른이나 할 것 없이 학교 선생님을 하늘처럼 섬기며 존경하기에 선생님 말씀 한마디면 그것이 개인이나 가정 그리고 마을의 길잡이가 되었던 곳, 그곳이 내가 사는 동네의 모습이었다.


  앞개울에서 벌거벗은 채 목욕을 하면서 잡은 물고기들을 검정 고무신마다 가득 넣었지만 해가 뉘엿뉘엿 지면 힘을 합쳐서 잡을 줄은 알면서도 욕심이 없어 가져갈 줄 몰라 다시 물속에 넣어 주던 일, 농사철이 되면 밭이나 논에서 참을 들면서 저 멀리 지나가던 이름 모를 나그네조차 소리 높여 불러 "여기 와 한 숟가가락 같이 먹고 가쇼"라고 손짓하던 모습들, 자식이 없거나 혹은 외면하여 홀로 노년을 보내는 이들에게 거저 사랑방을 내주어 살게 하고 땔나무를 해주며 먹을 것을 챙겨 주던 마음들, 모두가 가난했지만 누구 하나 외롭거나 굶거나 얼어 죽은 일 없던 곳, 그 정답던 사람들이 살던 속, 그곳이 바로 내가 태어나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살던 곳이다.


  초등학교를 마친 후 신학교에 가기 위해 1년 재수 즉, 6학년을 한 번 더 다닌 후 나는 서울로 갔다.  고향을 떠나 객지 생활을 40년째 하고 있지만 여전히 내 마음 깊숙한 곳에는 어린 시절의 생활들이 내 사고와 행동들을 지배하고 있다.  한마디로 참 좋은 동네였고 참 좋은 이웃들이었다.  그들을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말씀을 들어보지도 못했는데 이웃을 자기 몸처럼 아끼고 사랑했다.


  나는 가끔씩 먹을 것이 풍요하지만 굶주려 죽은 이들이 많고, 세계 4위로 석유를 수입하고 있지만 겨울에 얼어 죽는 이가 많으며, TV나 라디오드 각종 오락 기구가 있어도 우울증에 걸리거나 외로움에 못 견뎌 목숨을 끊는 이들이 속출하는 현대 상황을 보면서 지난날 어린 시절을 생각해 본다.  가난했지만 굶어 죽는 이 없었고, 옷가지 등이 없어 더없이 추웠지만 얼어 죽는 이 없었으며, 오락 기구라고는 TV나 라디오 하나 없었으되 외로움과 우울증에 시달리는 이들이 없었는데 물질이 풍부ㅏ고 문화가 발달되는 등 모든 것이 넉넉한 현 시대에 홰 사람들은 더 가난과 외로움과 육체적 정신적 추위를 경험해야 되는가 말이다.


  그것은 잘못된 것으로 향하는 인간의 이기심 때문이다.  인간의 한없는 이기심이 가져도 더 소유하고 싶어 하게 하고, 흘러넘치도록 채워도 더 채우고 싶어 하게 하고, 마셔도 더 갈증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사람은 그칠줄 모르는 욕심으로 자기가 사는 방과 응접실과 정원에 그리고 자기 주변 곳곳에 온갖 좋은 물건을 진열해 가득 채우고 있다.  그러면 허전한 마음이, 외롭고 공허한 마음이 채워지지 않을까 해서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물건으로 채ㅝ동 허전하고 외롭고 공허한 마음은 사라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인간의 마음을 채우고 흘러넘치게 할 수 있는 것은 좋은 물건이 아니라 좋은 이웃으로서만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피에느 판 파센의 [우리들의 날]이라는 책에 있는 이야기 하나를 소개하고 싶다.  보우그라는 마을에 우고린이라는 본성이 착한 꼽추가 살고 있었다.  우고린은 그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며 그의 어머니는 주정뱅이였기에 우고린은 소랑캐라는 그의 누나와 같이 살게 되었다.  그런데 그의 누나 소랑캐가 어느 날 도둑 누명을 쓰고 투옥되었다.  동생은 온 힘을 다해 누나 옥바라지를 했고, 얼마 후 누나는 석방되었다.  누나가 석방 되었을 때 꼽추인 동생 우고린은 병실에 눕게 되었다.  동생을 돌보느라 누나는 몸을 팔아 동생의 약 값과 병원비를 대야만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돈 있는 동네 불량배들이 꼽추 우고린을 넘어뜨리며 조롱을 했다.  "네 약값은 네 누나의 애인인 우리가 각각 한 프랑씩 낸 거야.  네 누나를 데려 와 봐.  또 한 프랑을 던져 줄 테니..."라고 외쳤다.  그때 이 마을에 사는 신부님이 와서 그들을 야단쳐 보내고는 우고린을 구해 주었다.  다음 날 꼽추 우고린은 모욕감과 치욕을 참을 수 없어 강에 뛰어들어 자살을 했고, 누나 소랑캐도 총으로 자살하였다.  신부님은 이들의 장례식에서 "이 어린것들은 자살한 것이 아니라 사랑이 없는 우리가, 이해가 없는 이 사회가 살해한 것입니다."라고 강론하면서 통곡하며 울었다고 한다.


  그리고 신부님은 이렇게 강론을 마치셨다.


  "천주교 신자들이여!  언젠가 세상의 심판자이신 하느님께서 제게 '네 양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신다면, '너는 네 양을 위하여 무엇을 하였느냐'고 물으신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주님! 그들은 사랑과 관심과 이해가 있는 양이 아니라 이기심과 욕심에 가득 찬 이리떼 였습니다'라고."


  새해에는 좋은 이웃을 찾지 말고 내가 좋은 이웃이 되어 보자.  그 옛날 우리가 물질적으로 가난했고 문화 혜택, 교육 혜택을 못 받았어도 좋은 이웃이 되어 살 줄 알았는데.  그때보다 물질적으로 풍요하고 교육과 문화의 수준이 향상된 오늘 왜 우리는 서로 좋은 이웃이 되지 못하고 있는가!  왜 우리는 주변의 불쌍한 꼽추 '우고린'을 또다시 조롱하며 자살로 몰고가고 있는가!


  좋은 친구를 탖지 말고 좋은 친구가 되어 주어야 하듯이


  좋은 이웃을 찾지 말고 좋은 이웃이 되어 주어야 한다.


  새해에는 내가 쓰고 있는 작은 방 한 칸도 나눌 수 있는 좋은 이웃이 되어 보자.


  내게 있는 귀한 시간과 재주를 나눌 수 있는 좋은 이웃이 되어 보자.


  내가 가진 ㄴ아까운 재물도 나눌 수 있는 좋은 이웃이 되어 보자.


  내가 가진 소박한 마음도 나눌 수 있는 좋은 이웃이 되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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