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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이야기
우리들의 이야기
제목 용소막마 성당 날짜 2003.09.01 12:28
글쓴이 ... 조회 697




제목 없음























































 



 


 


 


  용소막 성당은 전면 중앙 위로 돌출한 종탑이 얹혀져 있고 벽체는 붉은 벽돌로, 버팀벽은 회색벽돌로 되어 있다. 창의 형태는 모두 원형
아치형이며 테두리는 회색벽돌로 장식되어 있다. 중고등학교 시절배운 미술상식으로 보더라도 이내 고딕양식임을 알 수 있다. 보존상태가 양호하여
거리를 두고 본다면 최근에 축조된 것으로 오인할 수도 있을 듯 싶다. 그러나 자세히 건물 주위를 둘러보면 전쟁을 겪은 고건물에서 볼 수 있는
탄흔을 살펴볼 수 있다고 한다.


  내부 천정은 아치형으로 둥근 모양을 띄고 있으며 창틀과 기둥도 회색빛으로 외부 버팀벽과 같은 색채이다. 마룻바닥이어서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예배를 드릴 수 있다. 어린 시절 마룻바닥을 돌아다니며 하얀양말에 때를 묻혀와 혼나던 기억이 문득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예배시간인
10시가 되자 조금은 시끄러운 듯한 철음 섞인 타종소리가 들린다. 얼마나 오랫동안 잊혀졌던 소리인가? 요새는 오디오 시설이 완비가 되어 있는
터라 녹음이 잘 된 음악이 들려오곤 하는데, 사실 그 나마도 주위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다




 


 


 


신림면 용소막 성당(聖堂) 1904년 강원도 세 번째
성당


 


border=0> 원주에는 강원도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두 개의 성당이 있다. 원주 성당과 용소막 성당이 그것이다. 더욱이 용소막 성당에는
성경의 신·구교 공동 번역을 주도한 선종완 사제가 평생을 보내고, 또 그 원고본이 고스란히 보관되어 있어 또 다른 성전(聖殿)이 되었다. 원주가
기독교의 성지(聖地)요, 중심지로 자리잡은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님을 알게 해 준다.


  용소막 성당은 원주에서 제천으로 가는 가리파고개를 넘어야 한다. 중앙고속도로와 중앙선 철로가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넘나들며 나란히
달린다. 산과 계곡과 들과 마을들이 어울어져 차창으로 바라보이는 풍경이 한 폭의 그림같아 보기가 좋다.


  신림면 사무소를 지나 왼쪽으로 신림역이 보이자 갈래길이다. 백운면으로 가는 오른쪽길로 접어들자 바로 커다란 성당이 눈앞에 다가온다.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06호인 용암리의 용소막 성당(聖堂)이다. 서양의 고딕양식으로 지은 벽돌집에 뾰족탑을 한 본당건물의 모습은 아주
이색적이어서 그것만으로도 흥미와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용소막 성당 :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06호


 


vspace=10 border=0>용소막 성당은 광무 2년(1898)에 최석완(崔碩完)이 초가에서 공소(公所)로 모임을 시작했는데, 1904년에
독립 성당이 되었다. 강원도에서 풍수원과 원주의 성당에 이어 세 번째로 선 것이다. 지금의 성당 건물은 1915년에 시잘레(P.
Chizallet) 신부가 준공한 것이니 80년이 넘었다.


전면의 중앙에 장방형의 높은 종탑(鐘塔)을 두었는데, 벽면은 붉은 벽돌을 쓰고 기둥과 창틀은 하얀 벽돌을 사용하여 윤곽이 뚜렷하다.
문(門)과 창(窓)은 모두 세로로 긴 직각형인데 윗쪽만은 둥근 아치형이다. 6·25사변때는 북한군의 식량 창고로 사용되어 많이 파손되었으나,
수복후 복구하였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여기저기에 보수된 흔적이 보인다. 신앙(信仰)의 성전(聖殿)이 식량의 창고(倉庫)로 쓰인 것이 대조적이란 느낌이든다. 둘
다 사람들의 마음과 육체를 살리는 것이니 모두 하느님의 뜻일런가.


  성당 왼쪽에 건물이 한 채 있고, 그 앞에 동상(銅像)이 서 있다. 다가가 보니 선종완 로렌조 사제의 전신상(全身像)이다. 선 사제는
1915년에 성당 앞마당에서 태어나고, 1942년에 사제가 되어 1976년까지 평생을 성직 생활을 했다고 하니 동상으로 남을 만하다. 옆의
건물이 그의 유물관이다.


 


 


 


 


 


선종완 신부


 


border=0>약간 의외란 생각이 들었으나 유품들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선종완 사제가 바로 성서(聖書)의 신·구교 공동번역 주관자였기 때문이다. 1955부터 1976년까지 신구약 성서를 번역해 냈다.


  한글과 영어는 물론 라틴어 성경에 독일과 이탈리아·러시아 등 여러 나라의 성경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가 이탈리아 로마의 울바노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하고, 카톨릭신학대학교 교수로 연구한 삶이 이처럼 큰 결실로 남게 된 것이다.


  생전에 쓰던 유물과 유품들이 하나같이 수수하기만 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가 공동번역을 할 때 쓰던 책상 일조와 수십 권으로 묶은
성경 번역의 초고(草稿)들이 고스란히 진열되어 있는 점이다. 목재로 된 작은 책상은 다시 양옆과 앞부분을 이어서 접부채를 펴놓은 것처럼 손수
만들어 사용했다고 하는데, 그 착상(着想)이 기발하면서도 실용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곳곳이 해지고 닳아져 보잘 것 없는 책·걸상이지만 선사제가
얼마나 검소하게 열심히 살았는가를 충분히 알 수가 있다.


  반질거리는 책상 바닥을 만지니 체온이 따사하게 느껴진다. 일부러 열쇠를 가져다가 안내해 준 수녀의 마음도 알 것만 같아 가슴이
훈훈해진다.


 vspace=10 border=0> 성당 주변에는 수백 년 된 느티나무 몇 그루가 역사를 증명하듯이 서 있다. 서쪽에는 강당을 비롯한 부속
건물들이 들어서서 오랜 역사와 함께 그 규모를 말해 주고 있다. 남쪽 마당에는 2m가 넘는 큰 바위로 로렌조 사제 탄생지 표지를 세워
놓았다.


  돌아 나오는 길에서 본당 옆의 기도하는 하얀 석고 여인상이 눈에 띄였다. 성모 마리아에게 무슨 기도를 하고 있을까? 나도 그녀처럼 인간
구원과 함께 국가 민족의 화합과 발전을 기도해 본다. 종교인이 아닌데도 돌아오는 마음은 편안하고 발걸음이 한결 가벼웠다.-용소막마을 홈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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